1장. 경험, 존재의 이유
경험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존재의 이유 그 자체다.
생명으로서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바로 그것이 경험을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영혼’이라는 단어로 무형의 나를 표현한다.
의식과 에너지의 합.
하지만 영혼의 상태에서는 그 어떤 것도 ‘경험’할 수 없다.
무한한 가능성의 장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공간.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완전한 ‘무(無)’의 자리.
그곳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고통도 쾌락도 없으며, 감정도 생각도 없다.
어제 내가 본 영화 「거룩한 밤」에서 악마가 말하던 대사처럼,
“나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이다.”
무의 상태란, 그런 것이다.
시작과 끝이 하나이고, 처음과 마지막이 동일한 자리에 머무른다.
그 자리를 ‘신’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존재라기보다는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 중요하다.
2장. 물질을 입은 영혼
우리는 물질의 형태를 입은 존재로 이 세상에 온다.
움직이고, 떨리고, 진동하는 생명체로서의 삶.
그 삶은 종종 고통으로 가득하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연속.
하지만 동시에, 경이로움의 시작이기도 하다.
감각이 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맛보며,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물방울 하나는 바다다.
그리고 바다 또한 물방울이다.
하지만 바닷속 물방울은, 바다 속에서 자신이 물방울인지 바다인지 구분할 수 없다.
‘무’의 상태에서는 나를 정의할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다.
그러나 삶이라는 무대 위에 서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영혼은 몸이라는 옷을 입고,
하나의 에너지 덩어리, 정보의 집합체로서의 ‘나’ — 즉 **영(靈)**을 형성해나가기 시작한다.
삶이라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각기 다른 색과 모양을 가진 유일한 존재로 변화해간다.
3장. 하나가 여럿이 되는 과정
우리는 바다에서 떨어져 나온 물방울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바다의 일부다.
그러나 삶을 통해 하나의 파도가 되고, 하나의 강이 되어 흘러간다.
하나가 하나가 되는 과정,
하지만 그 하나는 더 이상 처음의 하나가 아니다.
하나로 시작해서 하나로 끝나지만, 그 안에는
이(二), 삼(三), 사(四), 오(五), 육(六), 칠(七), 팔(八), 구(九)…
수많은 차이와 층위가 생긴다.
그 층위가 바로 우리의 경험이고, 삶의 기록이다.
그렇기에 경험은, 그것이 무엇이든 귀한 것이다.
선하든 악하든, 좋든 나쁘든.
경험 그 자체는 어떤 가치의 경중도 없다.
우리의 감정이 잠시 붙는 해석일 뿐이다.
4장. 고통도 성장이 된다
고통스럽고 혹독한 경험일수록,
영혼의 성장은 더욱 크게 일어난다.
그만큼 많이 느끼고, 많이 받아들이고, 더 깊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감정은 지나간다.
그러나 존재로서의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곧 ‘나’를 구성하는 영적 DNA가 된다.
삶은 ‘느낌’의 연속이고,
느낌은 곧 ‘성장’의 언어다.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 존재는 멈춰 있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는 아파야 하고,
때로는 절망 속에서도 눈을 떠야 하며,
때로는 끝났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다시 살아야 한다.
5장. 평온은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평온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완전한 평온’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방향이 어긋난 욕망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영혼으로 존재할 때,
우리는 이미 평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움직임도 없고, 상처도 없으며, 비교도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경험도 없다.
따라서 이 육체의 삶 속에서는,
평온보다는 경험을 선택해야 한다.
고요함보다는 진동을,
정적보다는 감각을.
그것이 곧 살아 있는 자로서의 특권이며,
영혼이 삶을 통해 배우고자 하는 진정한 이유일지도 모른다.